위치 : 종각역 6번 출구와 5번 출구 사이
종로구는 역사와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중 종로구 관철동에있는 종각역에는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 그의 동상이 있는 이유는 그가 처형된 곳이기 때문이다.
전봉준 장군은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명좌(明佐). 초명은 전철로(全鐵爐). 별명은 전영준(全永準). 호는 해몽(海夢)이다.
동학의 접주이며,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이다. 몸이 왜소하여 녹두라고 불렸으며, 훗날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이 여기서 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의 사진은 일본 사진사 무라카미 덴신(村上天眞)에 의해 찍힌것이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봉준 장군의 사진이다. 모습에 대한 이미지 자료가 많이 없다 보니 이 사진을 토대로 동상을 제작한듯하다.
종각역 5번과 6번 출구 사이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닥에는 외국인을 위해서 명판이 설치되어있다.
Statue of Jeon Bong-jun
Born in Gochang December 1855, jeon Bong-jun led the Donghak Peasant Army in the spring of 1894 in autumn of that year, he fought as a military leader against Japanese troops that invaded the Joseon Dynasty. He was captured after the battle of Gongju in winter and was executed at this site on April 24. 1895
해석
전봉준 동상
1855년 12월 고창에서 태어난 전봉준은 1894년 봄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에 맞서 무장 투쟁하였다.
공주 전투 후 겨울에 그는 포로로 잡혀 1895년 4월 24일 이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전봉준 장군의 얼굴을 마주 보면 시선이 정면을 향하지 않고 있다.
무엇을 바라보시는 걸까
눈빛이 형형하다.
형형한 눈빛과 표정, 옷 묘사에서 느껴지는 터치감에서 중압감과 그의 굳건한 성격이 잘 묘사되어있다.
하지만 당시 사진상으로 보이는 죄인의 신분으로 압송되는 모습인 맨 상투 차림으로 제작된게 조금 아쉽다. 아무리 마지막 모습이라지만 왜 이런 형태로 제작하였는지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꺼같다. 이렇게 제작된게 다 이유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동상 뒷면 좌대에는 한국어로 전봉준 장군의 생애가 설명이 되어있다.
전봉준(全琫準,1855~1895)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봉기하였다. 농민 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 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 기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서울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에 갇혔다. 그리고 권설 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다음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2018년 4월 24일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 위원회
'조형물, 탑, 명비 > 동상,흉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원한번 빌어보소!🐂 소원을 이뤄주는 언양 명품황소 (울산 울주군 언양읍) (1) | 2022.12.05 |
---|---|
안중근 의사 동상 (경기도 부천시 안중근공원) (0) | 2022.10.27 |
얼굴없는 평화의 소녀상 (경기도 부천시 안중근공원) (0) | 2022.10.19 |
서울 종로! 송해 선생님을 기억하는 길 (1) | 2022.10.06 |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0) | 2022.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