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비와 조형물 답사기행🧭

Exploring sculptures and monuments

조형물, 탑, 명비/동상,흉상

박관현 열사 추모비

김놉새 2023. 10. 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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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의미 있는 다양한 시설물들을 둘러보고
기행문을 쓰는 김놉새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 시설물 여행을 떠나봅시다. 
(앞서 본인은 정치적, 종교적 성향 이 없음을 밝힙니다.)

 


 

민주화의 새벽기관차를 아시나요? 
신군부의 반인권적 폭력에 죽음으로 저항했던
민주열사 박관현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민주주의의가 지켜지지 못했던 때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
학생들과 시민들을 이끈 선구자적 역할을 해
새벽기관차라 비유됐습니다.

박관현 열사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는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박관현 열사의 생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합니다.

 

 
 박관현 像
민주열사 박관현 상이라고  좌대에 쓰여있습니다.

 


또한 박관현열사의
생전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동상의 동세를 살펴보면
오른손으론 꽉쥔 주먹을

 

 

왼손에는 연설문을 힘 있게 쥐고 있습니다.

 

 

우직해 보이는 동세에서
그의 강인한 성품과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박관현 열사는 평소 모시나 삼베 한복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동상의 복식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동상 뒷면 좌대에 있는

건립취지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건 립 취 지

박관현열사 추모비건립 범군민 추진위원회는 1980년 봄 전남대학교 총 학생회장으로서 억눌린 민중의 가슴속에 민주화의 의지와 항쟁의 열기를 심어주고 광주 5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게 했던 박관현열사의 민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영광군 청년단체협의회의 발의로 전 군민의 성원과 격려를 한데 모아 참회와 추모의 마음으로 이 동상과 추모비를 세우는 바이다
서기 2001년 11월 11일
박관현열사추모비건립범군민추진위원회

 

 

좌대 옆면에는
생전의 연보가 연도 순으로 쓰여있습니다.
연보도 살펴보겠습니다.

 

 

박관현 열사 연보

1953년 6월 19일 전남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출생
1967년 불갑초등학교를 거쳐 광주 수창초등학교 6학년 전학, 동교 졸업
1973년 광주고등학교 졸업
1978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교 입학
1978년 12월~1979년 2월 광주공단 노동자 실태조사 작업에 참여
1979년 4월~1980년 4월 광천 "들불야학" 강학으로 활동
1980년 4월 9일 전남대학교 총 학생회장에 당선
1980년 5월 18일~1982년 4월 5일 5.17 조치로 피신, 서울의 도봉구 삼양동, 공릉동에서 생활
1982년 4월 5일 체포, 12일 광주교도소 수감
1982년 7월 10월 세 차례에 걸쳐 50여 일 동안 단식투쟁
1982년 9월 광주지법에서 '내란중요 임무 종사자'로 징역 5년 선고
1982년 10월 11일 병보석 구속집행정지로 전남대 병원에서 가족의 품으로 안김
1982년 10월 12일 이날 새벽 장기단식으로 인해 숨짐 영광 불갑면 쌍운리 마을 앞산에 묻힘
1987년 11월 3일 광주 망월동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
1997년 5월 9일 광주 망월동 5.18 신묘역으로 이장

* 강학이라는 표현은 학문을 닦고 연구함을 의미하는 뜻으로
여기서는 교사활동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외 동상 주위에는 향로와 제단
그리고 다른 비들이 있습니다.
이것들도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동상 앞 향로와 제단입니다.
주기적으로 제를 지내는 곳입니다.

 


박관현 열사를 기준으로 왼편의 비입니다.

 


영광의 아들, 민주의 넋 박관현 열사여
오월 그날 
발버둥 치는 수천만의 아우성 한 몸에 지고
군부독재 그 험난한 어둠을 깨치더니
민주 평등 위한 역사의 제단에
마침내 내어 바친 그대 서른 청춘이여

그대의 죽음, 곧 민주화요 
사람이 곧 하늘이기 위한
인간존엄의 성전이었으니
아! 도청 앞 그대의 사자후
80년 5월 항쟁만이 아닌
조국 민주주의 역사를 열어제친 포효였음을

빛나리라!
몸은 문드러지고 흙이 되었어도
오직 정신만은 영원하리라

세상 어느 곳 불빛 한점 보이지 않던 시대
절곡의 대지를 맨 몸 채로 구르며
불갑산 솔숲 바람처럼 살다 간 청춘이여

그대 이 땅에 남기고 간 투혼
들꽃이 되고 들물이 되어
조국산천에 피어날지어니
꺼지지 않는 횃불로 타오르려나

비추어 비추어도 다함없는 그빛!
자유여 민주여
민중이 주인 되는 참 세상이여

 

 

다음으로 오른편 기단 밖에 있는 추모시비입니다.
앞면과 뒷면 모두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추모시>

기억하라, 온몸으로
결코 질 수 없고 꺾일 수 없어 소나무처럼 거센 비바람 눈보라와 온몸으로 맞서 온 서른 해의 세월이여
기억하라, 검정고무신을 끌고 용봉골과 광천동 들불 야학 사이를 오가던 한 강학
그러나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던 시대의 조국, 거칠 것 없이 치솟아 오르는 분수처럼 포효하며 속수무책 역사와 한판승을 겨루던 한 청년을,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한 미래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과거, 그리고 끊임없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현재 속에서 결코 타협하거나 굴복할 수 없어 그 누구에게도 머리 수그린 적 없던 이들이여
기억하라,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랑과 자유, 진리와 평등의 세상 속에서 민주화 성회를 이끌던 단호한 눈빛의 순교자.
어디선가 휘몰아쳐 오고 있을 광풍에 제 오랜 신념과 자존의 나무뿌리를 잡고 뒤흔들 때마다 도청 분수대에서 푸른 날개를 펴는 불사조를
오, 누구랄 것이 없이 모두가 부끄러웠고 또 당당했기에 당장의 가난과 절망에도 무릎 꿇을 수 없었던 나날들이여
기억하라, 예나 지금이나 그 어떤 희생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이 온통 차지한 세상 속에서 그 어디선가 출발을 기다리며
결코 달라지지 않는 동력과 속도, 신념과 양심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놀라운 신비의 새벽 기관차,
그 어느 순간에도 제 것을 고집하지 않기에 마침내 제 죽음마저도 기꺼이 민족의 제단에 봉헌한 우리들의 영원한 학생회장을,
기억하라, 지금도 계속되고 반동과 혁명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무한 횃불행진, 아주 뻔뻔해진 서른 해의 시간들이 다시금 서른 번 반복된다고 해도 결코 망각하거나 지울 수 없어 쉼 없이 뒤돌아보면서도 앞으로 날아가는 이 힘센 역사의 천사들, 그러나 제대로 된 명분도, 지켜가야 할 신념도 없는 시대 속에서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에 우리가 또다시 그대의 이름을 애타게 호명하고 있는 것을.

 

뒷면에는 박관현열사가 걸어온 길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1987년 이후인 사후의 일까지 쓰여 있습니다.

 

 

추모시비 다음으로 다른 곳에는
청년의 길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근처를 청년의 길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래 좌대에 쓰여있습니다.

 

불갑사 주변 왕벚나무 도로는 「사단법인 한국 청년회의소 영광 청년회의소」에서 1990년 영광군 지역발전 대토론회를 개최하여 발의된 사업의 결실로서, 1994년 영광청년회의소 회원들이 영광군을 비롯한 기관 사회단체와 영광군민 한 분 한 분의 정성을 모아 총사업비 1억 5천여만원을 들여 조성하였다. '벚꽃굴' 을 형성해 불갑사지구 관광도로를 형성 한다는 취지로 조성된 이 나무들은 원산지가 대한민국 제주도로 순수한 우리나라의 꽃이며 4월 10일경에 만발한다. 또한 이 왕벚나무 길은 80년 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광주민중항쟁의 선봉자 역할을 하며 30세의 고귀한 청춘을 민주화투쟁의 제단에 바친 박관현열사의 애국정신이 깃든 길이며 정유재란 때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성리학을 전파, 일본성리학의 개조가 된 수은 강항선생의 절의와 업적이 서린 길이다. 혹독한 포로생활 속에서도 절의를 보전하면서 일본 근세문화에 큰 자취를 남긴 강항선생의 업적과 올곧은 기품으로 불의에 항거하며 옹골찬 기백으로 짧은 생을 살다 간 박관현열사의 정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의 숭고한 좌표가 아닐 수 없다. 길은 숫제, 면면이 이어온 오랜 역사의 발자취이자 밝은 내일을 향해 뻗어가야 할 희망이어야 하리라. 충절의 기상과 민주주의의 정기가 어린 이 길은 바로 우리 고장의 소중한 자산이요, 희망에 찬 미래의 메세지이다. 이에 영광청년회의소는 이곳 왕벚나무 도로를 '청년의 길'로 명명하여 비를 세우고, 우리 고장 청년정신의 상징으로 삼고자 한다.

2003년 7월 17일
영광청년회의소

*숫제란 뜻은 순박하고도 진실하다는 뜻과 처음부터 차라리또는 아예 전적으로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관현열사 혁명정신계승비도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비는 1989년에 만들어져,
박관현 열사의 학교였던 전남대에 있던 것으로 

2023년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온 것입니다.

 

 
혁명정신계승비에서는
박관현열사의 생애와 그의 연설내용의 일부,
그리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잊지 말자는 내용이
아래 좌대에 쓰여있습니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외치며
학생들과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던 박관현 열사
그의 삶과 정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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