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비와 조형물 답사기행🧭

Exploring sculptures and monuments

조형물, 탑, 명비/동상,흉상

잊지말아야 할, 그리고 해결해야 할 역사 성동 평화의 소녀상과 성동 평화의 기림비

김놉새 2023. 2. 5. 23:14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고난과 수탈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해방 후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입니다. 당시 어린 소녀들은 전쟁터로 끌려가 인권을 유린당했으며, 전쟁 후 살아 돌아왔지만 평생 아물지 못할 몸과 마음의 상처를안고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로부터 진실한 사과 한마디를 듣지못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현재 피해 생존자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빨리 진실한 사과를 바랄 뿐입니다. 또한 후대에도 인권유린의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을 주기 위해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 중 서울 왕십리 광장에는 평화의 소녀상과 그 옆에 있는 성동 평화의 기림비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위치: 서울 왕십리역 5번 출구 (서울 성동구 행당동)

소녀상과 평화의 기림비

왕십리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소녀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5번출구

평화의 소녀상

123센티의 앉은키
슬픔을 숨기고 있는 듯한 소녀의 표정
땅에 닿지 않는 맨발의 뒤꿈치

소녀상 정면

성동 평화의 소녀상은 2017년 6월 10일 성동구민들의 자발적 의지와 뜻으로 왕십리역 광장에 건립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들에게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설치한 것입니다.

명판

소녀상 앞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명판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평화비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맺힌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에 30만 성동구민은 뜻을 모아 다시는 피와 눈물로 쓴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평화와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세웁니다. 이 소녀상은 자라나는 미래세대와 함께 역사를 바로 세우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성동구민의 자부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7년 6월 10일
성동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

불굴의 꽃으로 피어나다

꽃다운 청춘이 황량한 벌판에 짓밟혀도
내일이 있어 고된 거라고
희망이 있어 힘든 거라고
가슴 깊이 꾹꾹 묻어둔 세월입니다.

잔인하게 휩쓸고 간 파도 같은 삶에도
행복이 있어 아픈 거라고
기쁨이 있어 슬픈 거라고
가슴 먹먹하게 지새운 나날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머나먼 타국땅에서 시들어버린
피 울음 머금고 산 인고의 세월

이제는
어둡고 무자비한 세월을 이겨낸
역사 앞에 당당히 선 소녀로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소녀로
우리들 가슴에 불굴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또한 소녀상 옆에는 소녀상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요.

평화의 소녀상 설명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님께서 처음으로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용기를 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밝힌 일 년 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수요집회가 시작되었다.

2011년 수요집회는 20년이 되었고 12월 14일 수요집회는 1000회를 맞이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소녀상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그리고 2017년 6월 10일 한반도 곳곳에서 평화와 인권이 공기처럼 살아 숨쉬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성동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새는 하늘을 날다가 땅에 앉기도 하여 산 사람들과 돌아가신 사람을 영적으로 연결해 주는 영매의 의미를 가지고도 있다. 즉 하늘은 돌아가신 사람들의 공간이며 땅은 현실에 있는 사람이고 이를 오가는 새가 영매의 역할인 것이다. 하여 비록 지금은 돌아가시긴 했지만 마음만은 현실에 있는 할머니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한복 입은 소녀상 : 조선의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정부가 조직적인 폭력을 자행하였다는 것을 되새기고, 끌려갔을 당시의 한복 입은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할머니의 그림자 : 조각의 모습은 소녀의 형상인데 그림자는 현재의 할머님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사람(소녀)의 그 그림자(할머니)인데 소녀와 할머니가 다른 사람일까? 결국 같은 사람인데 기나긴 시간이 흘러 소녀가 할머니가 된 것이다! 사과 반성 한 번 없고 지나온 세월, 할머니들의 원망과 한이 서린 시간의 그림자이다.

그림자 속의 하얀 나비 : 그 할머니의 그림자 모습 중에 가슴 부위에는 하얀 나비가 있다. 일본 정부의 사죄 한마디를 기다리며 눈비 맞아가며 수요시위를 지켜오셨는데 그 원망과 서러움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고 계시다.
보통 나비는 환생을 상징하는데 부디 나비로 환생하셔서 생전에 원하셨던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할머니 그림자 가운데 하얀 나비를 넣었다.

뜯겨진 머리카락: 당시 조선 소녀의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분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짧게 자르지 않았다.
그런데 소녀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머리카락이 거칠게 뜯겨진 모습인데 이는 낳아주신 부모와 내가 자란 고향을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억지로 단절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뒤꿈치를 든 맨발 : 소녀의 발은 맨발이다. 소녀는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오지 못하거나 돌아와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닌데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할머니들은 죄지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오셨다.그리고 드디어 1991년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있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우리 할머니들의 가슴의 한을 풀어주지 못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뒤꿈치를 든 맨발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빈 의자 : 여기에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연로하신 탓에 일본 정부의 그릇됨을 고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세상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님들의 빈자리를 쓸쓸하게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 소녀상 조각 옆의 빈 의자에 나란히 같이 앉아 그 당시 어릴 적의 소녀의 심정을 생각해 보고 현재의 할머님들의 외침을 함께 느껴보는 자리이다.
세 번째는 할머님들께서 이 자리에 안계서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위해 싸워오신 할머님의 염원을 이어 미래세대가 끝까지 함께하는 약속의 자리이다.

소녀상 뒷모습

소녀상의 뒷모습입니다.
설명을 읽어보고 살펴보면 바닥의 할머니모습의 그림자가 눈에 띕니다.

소녀상 그림자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오른쪽에는 평화의 기림비가 있습니다.


성동구 평화의 기림비

역사인식의 문(과거), 공감의 문(현재), 희망의 문(미래)

성동평화의 기림비는 2018년 6월 10일 왕십리 광장에 소녀상 옆에 건립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이신 김학순 할머님의 증언과, 향후 일본정부에게 평화적인 해결을 원한다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이 기림비는 소녀상 지킴이 학생들의 디자인 공모를 통해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 앞에 있는 명판을 읽어 보겠습니다.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

우리는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여기 이곳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건립합니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점령지에 거주하는 여성을 강제로 연행하여 그들의 존엄한 인격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밝혀진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반인권 · 반인륜적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우리에게 사실상의 침묵과 망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림비를 세움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와 눈물로 쓰인 역사적 진실을 우리 세대로부터 미래 세대까지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겠습니다.

우리는 다짐합니다.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수호할 의무를 부여받은 세계 시민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치유와 회복, 진실과 책임 규명, 참회와 사죄,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늘 곁에서 힘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성동구민의 마음을 담아 이 기림비를 진실과 정의를 향해 의롭게 일어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결코 망각되지 않을 역사의 진실 앞에 헌정합니다.

2018년 3월 10일
성동구청장 정 원 오


기림비의 구성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각각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과거를 상징하는 역사인식의 문 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과거를 나타내는 역사인식의 문 앞에 웅크려 앉은 소녀가 있습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의 무기력한 모습을 표현한 듯합니다.
그리고 그 뒤 역사 인식의 문에는 역사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습니다.

역사인식의 문 (과거)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침략전쟁 중 주둔지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습니다.

일본군 ' 위안부' 제도는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위안소에서는 끔찍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고 피해자들의 몸에는 지금도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전쟁의 피해자들은 가해국 일본을 향해 인권회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국 일본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을 향해, 자발적 매춘부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국 일본정부의 진정한 < 공식사죄>와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지 않기 위한 <법적배상>입니다.

역사인식의 문에는 故 김덕순 할머니니의 그림도 보입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위안부'였다는 사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상처를 숨기며 살았을 피해자들 무기력한 모습이 동상에서 보이는 듯합니다.

소녀의 웅크린 모습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역사 인식의 문 다음으로 공감의 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어린 소녀는 현재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웅크려 있던 소녀는 용기 내어 일어나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해결을 원한고 있습니다.
공감의 문 앞의 동상은 1991년 최초로 일본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던 故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공감의 문 (현재)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을 향해,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2007년 7월 30일 미국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안(H. Res 121)은
▲일본 군대가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사실을 일본 정부가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질 것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주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할 것
▲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이에 대해 교육을 시킬 것 등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2007년 미국 결의안 통과 이후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이 없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해결해야 할 우리 민족의 아픔이자 여성의 수난사입니다. 당시 태어난 여성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었기에 피해 할머님들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글과 함께 故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故 김학순 할머니는 대한민국의 여성 운동가입니다.
17살에 일본군에게 잡혀가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피해자 최초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고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첫 증언을 했던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만약 김학순 할머님의 증언이 없었다면 피해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겁니다.

동상속 할머니의 발은 맨발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맺힌 한이 풀리지 않았기에, 여전히 몸과 마음이 불편한 상황임을 나타냅니다.

어서빨리 할머니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염원하고 지지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희망의 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희망의 문은 미래를 나타냅니다.

희망의 문 앞에는 새를 하늘로 날리는 소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희망의 문 (미래)

"나는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옥선 할머님의 외침에 우리 모두 귀 기울이고 문제 해결에 함께해야 합니다.

20세기 가장 고통받은 분들이지만 용기 있는 자기 고백을 통해,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21세기 가장 용감한 여성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정의와 책임을 가지고 일본정부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 및 국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을 독립적 인격체로 보호해야 합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행동을 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은 못다 핀 꽃 들입니다. 우리 함께 피해자 명예회복을 통해 꽃을 피워주어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 건립을 통해 피해자들의 올바른 역사를 전달하고 인권회복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희망합니다.

평화의 기림비는 미래세대이자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는 중 고등학생들인 소녀상 지킴이들과 함께합니다.

소녀가 희망의 새를 하늘로 날려 보냅니다.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공식사과와 배상 그리고 피해자들의 위로가 이루어진 세상,

평화의 메시지가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긴 이야기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를 희망의 문 앞에서 새를 날리는 소녀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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