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안중근 의사 기념 조형물 부조벽화 알아봤습니다. 이번에는 공원 내에있는 유묵이 쓰여진 시비석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묵(遺墨)이란 남길유(遺) 먹묵(墨)자를 써서 사람이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말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많은 유묵을 남기셨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하지만 그전에 왜 안중근 공원이 부천에 있나 궁금해 하시는 분 들이 있을겁니다. 안중근 공원은 원래 중동공원이라 불렸던 곳 이었으나, 부천시의 자매도시인 중국 하얼빈으로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을 기증받아 세우게되면서 안중근의 이름을 본따 공원명을 개칭한 곳입니다. 하얼빈은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인곳 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아니지만 이 기념비는 부천시와 중국 하얼빈시가 1995년11월28일 자매결연을 체결하여 10주년이 되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세운것 입니다. 이 기념비를 통해 부천시와 하얼빈시의 친분을 알 수 있습니다.
입구에있는 안중근 공원 안내도 입니다. 나무로 되어있는 이 안내도는 시비석들의 위치와 이름, 공원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안중근 공원(安重根公園) 을 알려주는 비석이 초입에 있습니다.
의거의 이유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요,
또 내가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전쟁에서 패배한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자격으로 이 일을 행한것이 아니요,
대한민국 의군 참모총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하라
-안의사께서 일본 법정에서 외친것-
이 외침은 개인의 신분으로 의거를 한것이 아니므로 형사범이아닌 전쟁 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한 대목입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러시아 등을 활동하면서 모진 어려움 속에 남긴 글
男兒有志出洋外 事不入謀 難處身 望須同胞誓流血 莫作世間無義神
남아유지출양외 사불입모 난처신 망순동포경류혈 막작세간무의신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 두기 어려워라.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들 마오!"
-안의사께서 조국을 떠나면서 남긴 글-
안의사가 독립군으로 전쟁에서 승리도 하곤 했지만 그 작은 전쟁으로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항상 쫓기는 어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큰일을 못 이루니 몸을 두기 어려워라" 라고 고백하고 있다. 또 힘을 합쳐 숨겨주고 도와주어야 할 동포들의 도움도 못 받는 심정을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세상에 의리없는 귀신으 되지를 마오" 라고 실토하고 있다.
단지동맹 취지문
"오늘날 우리 한국 인종이 국가가 위급하고 생민이 멸망할 지경에 당하여 어찌하였으면 좋을지를 모르고 혹 왈 좋은 때가 되면 일이 없다 하고, 혹 왈 외국이 도와주면 된다 하나 이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니 이러한 사람은 다만 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의뢰하기만 즐겨하는 까닭이라.
우리 2천만 동포가 일심 단체하여 생사를 불고한 연후에야 국권을 회복하고 생명을 보전할지리. 그러나 우리 동포는 다만 말로만 애국이나. 일심단체니 하고 실제로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단체가 없음으로 특별히 한 회를 조직하니, 그 이름은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라.
우리 일반회우가 손가락 하나씩 끊음은 비록 조그마한 일이나
첫째는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빙거요,
둘째는 일심 단체하는 표라.
오늘날 우리가 더운 피로써 청천백일지하에 맹세하오니 지금 위시하여 아무쪼록 이전허물을 고치고 일심 단체하여 마음을 변치말고 목적에 도달한 후에 태평동락을 만만세로 누리옵시다."
-안의사에서 작성한 단지동맹을 통하여 설정한 동의단지회 취지문-
조국을 떠나면서 남긴 글
"사나이 큰 뜻을 품고 타국으로 떠나가니
살아서 성공 못하면 죽어서 돌아오지 않으리
유골을 구태여 선조의 무덤 옆에 묻으랴
세상엔 가는 곳마다 청산이 무진한대"
대한에서 태어난 대한의 남아로서 대한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가니성공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국권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한 내 유골을 어떻게 선조의 무덤에 묻을 수 있으랴 타국에도 가는 곳 마다 청산이 얼마든지 많은데
-안의사께서 조국을 떠나며 남긴 글-
丈夫歌 (장부가)
丈夫處世兮 其志大矣 (장부처세혜 기지대의)
時造英雄兮 英雄造時 (시조영웅혜 영웅조시)
雄視天下兮 何日成業 (웅시천하혜 하일성업)
東風漸寒兮 狀士義熱 (동풍점한혜 장사의열)
念慨一去兮 必成目的 (염개일지혜 필성목적)
鼠竊伊藤兮 豈肯比命 (시절이등혜 개긍비명)
豈度至此兮 事勢固然 (개도지차혜 사세고연)
同胞同胞兮 速成大業 (동포동포혜 속성대업)
萬歲萬歲兮 大韓獨立 (만세만세혜 대한독립)
萬歲萬歲 大韓同胞 (만세만세 대한동포)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자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참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개히 한 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이등이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를 줄을 시인했으리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 안의사께서 1909년 10월 23일 밤 하얼빈에서 지은 시
시비석들 중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인내(忍耐)
庚戌三月 (경순삼월)
於旅順獄中 (어여순옥중)
大韓國人 (대한국인)
安重根 書 (안중근 서)
경술삼월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 라는 뜻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유묵을 쓴 뒤 아래에는 손바닥 도장인 장인을 찍었습니다.
第一江山(제일강산)
庚戌二月(경순삼월)
於旅順獄中(어여순옥중)
大韓國人(대한국인)
安重根 書 (안중근 서)
제일가는 강산 이라는 뜻으로 경술이월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 라고 해석합니다.
삼천리 금수강산 한반도에 대한 사랑 조국애를 나타낸 글입니다.
天堂之福 永遠之樂 천당지복 영원지락 :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歲寒然後知 松栢之不彫 세한연후지 송백지부조 : 눈보라가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人無遠慮 難成大業 인무원려 난성대업 :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 :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
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안위 노심초사 :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爲國獻身 軍人本分 위국헌신 군윈본분 :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博學於文約之以禮 박학어문 약지이례 : 글 공부를 널리하고 예법으로 몸 단속하라
이외에도 스스로를 보배처럼 사랑하라는 自愛寶 자애보,
黃金百萬而不如一敎子 황금백만이불여일교자 황금 백만냥도 자식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라는 시비석들이 있습니다.
여순 고등법원장과의 담화 중
안중근 의사
"나를 보통 살인범으로 판결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는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의병 중장의 신분으로 전쟁에서 적장 이토를 죽엿을 뿐이다.
나는 전쟁포로로서 응당히 국제공약에 따라 처리를 받아야지 려순 지방법원의 판결을 받아서는 안된다.나는 동양평화를 위해서 이토를 사살하였다.
일본은 응당히 이토의 착오적인 정책을 개변해야 한다." 고 하였다
안중근 의사님을 면담한 일본 고등법원장
"그는 비교적 긴 시간 동양평화에 대한 관점과 일본정부를 권고하는 말을 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을 결심하였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니 상소하지 않겠다" 고 하였다.
-1910년 2월 17일 안의사와 여순 고등법원장과의 담화 중
최후의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 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의사께서 순국 직전에 정근 공근 두 아우와 흥신부에게 준 것-
분도(맏아들)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예수를 찬미하오.
우리들은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베필이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히 모이려 하오
반드시 감정에 괴로워함이 없이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하고 두 동생과 화목하여 자식의 교육에 힘쓰며 세상에 처하여 심신을 평안히 하고 후세 영원의 즐거움을 바라뿐이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상세히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장부 도마 올림>
-안의사께서 1910년 경술 2월 14일 무인에게 마지막 편지를 씀
이 글은 안중근의사님의 아내에게 붙이는 글입니다. 분도는 맏아들의 이름입니다. 또한 도마 라는 뜻은 안중근의사의 세례명인 토마스를 부르는 것입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안의사께서 순국 직전에 한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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